「다타라제철」의 기술적 변화

  • たたら製鉄

「다타라제철」은 약 천 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일본의 전통 제철법입니다.

고대 일본인들은 산이나 강, 바다에서 얻은 사철을 목탄(숯)의 화력을 이용해 제련함으로써 철을 얻었는데, 선조들의 끊임없는 기술 개량을 통해 일본의 독자적인 제철법으로 승화된 이 제철법을 「다타라제철」이라고 합니다.

상자형 용광로를 이용한 사철제련기술

고대에는 주고쿠 지방은 물론 도호쿠,간토,호쿠리쿠,긴키,규슈 등 각지에서 철이 생산되었습니다. 주고쿠 지방에서는 처음에는 철광석을 원료로 사용하였으나, 사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상자형 용광로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간토 지방이나 도호쿠 지방 등에서는 사철을 사용했으나, 상자형 용광로와 함께 수직형 용광로도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철 생산은 주고쿠 지방과 도호쿠 지방의 일부에서는 고대,중세,근세까지 이루어졌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가마쿠라 시대 전에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용광로와 지하구조의 개량・발전

  • 제철이 시작된 고분시대 후기(6세기 후반)의 용광로는 원통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자립형 용광로로 지름이 50센티 정도로 작았습니다.

    나라시대(710~794)에는 용광로의 길이를 늘린 상자형 용광로가 등장합니다. 용광로의 길이가 늘어남으로써 용광로의 모양은 풀무에서 용광로 쪽으로 부채 모양으로 송풍관을 늘어놓는 구조가 되었는데, 이것이 상자형 용광로의 기본 형태가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고대의 용광로 구조가 발전되어,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점점 거대화되었습니다. 근세에는 그 크기가 더욱 커져서 길이 250~300cm、폭70~90 cm、높이110cm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 6세기 후반의 자립형 용광로, 이마사야 산 유적 재현모형[와코 박물관]
    6세기 후반의 자립형 용광로, 이마사야 산 유적 재현모형[와코 박물관]

용광로의 거대화는 지하구조의 거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대형 용광로로 고온의 작업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지하구조도 지하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 용광로의 온도저하를 막도록 대형화되었습니다. 근세에는 용광로의 바로 밑에, 목탄(숯)을 깐 부분인 「혼도코」와 그 양측의 2개의 터널부분인 「고부네」로 이루어진「도코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작업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지하구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송풍장치를 개량하여 풍량을 확보함으로써 용광로의 대형화가 가능해졌습니다.

  • 근세의 용광로[스가야 다타라 산나이]
    근세의 용광로[스가야 다타라 산나이]
  • 하구조 실물 모델[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하구조 실물 모델[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천칭 풀무의 등장

「다타라제철」의 기술적 변화에 있어서 천칭 풀무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천칭 풀무의 도입이 근세에 주고쿠 지방에서 다타라제철이 번성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대형화한 용광로에는, 용광로 내부의 온도를 높이는 더 강력한 송풍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다타라제철에서는 발로 밟는 풀무가 쓰여왔는데 이 발풀무를 개량한 것이 천칭 풀무입니다. 천칭 풀무는 양발로 좌우의 풀무를 번갈아 밟는데 한쪽을 밟으면 다른 한쪽이 올라가는 시소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천칭 풀무의 도입으로 인해 생산률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 천칭 풀무 복원모형 [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천칭 풀무 복원모형 [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 풀무를 밟는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을「방코」라 하는데, 약 70시간의 작업 중 잠시도 쉬지 않고 용광로 안에 바람을 보내는 힘든 작업을 했습니다. 방코는 3인 1조로, 1시간 밟고 다른 사람과 교대하여 2시간 쉬는 식으로 하였는데 이 모습이 [가와리 방코 *방코 교대] 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 Underground structure full-scale model (Okuizumo Tatara and Sword Museum)
      취사 풀무[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 취사 풀무[오크이즈모 다타라와 도검관 ]
      수차 풀무에 바람을 보내는 수차 건물[스가야 다타라 산나이]

「다타라제철」의 종언과 부활

다타라제철은 생산성이 높은「공업」으로서의 서양식 제철・제강법 앞에 쇠퇴일로를 걷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이쇼 시대 말에는 마지막 다타라가 폐업함으로 일본의 다타라제철은 그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다타라제철은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군검 수요 등으로 일시적으로 부활하였으나,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쇼와52년(1977), 일본도의 원료인 와코(和鋼)가 바닥남에 따라, 일본미술도검보존협회가 문화청의 후원을 받아「닛토호 다타라」를 설립하였고, 그후 지금까지, 「닛토호 다타라」에서는 다타라제철로 생산한,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도 재료인「다마하가네 玉鋼」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다타라제철이 부활한 것입니다.

  • 고로(高炉)와 코크스 등의 서양기술로 성공한 가마이시 광산 다나카 제철소
    고로(高炉)와 코크스 등의 서양기술로 성공한 가마이시 광산 다나카 제철소
  • 독일에서 기술을 도입한 야하타 제철소
    독일에서 기술을 도입한 야하타 제철소
  • 숯 투입「닛토호 다타라 작업」
    숯 투입「닛토호 다타라 작업」
  • 철 꺼내기「닛토호 다타라 작업」
    철 꺼내기「닛토호 다타라 작업」